금융·무역 실무에서 숫자와 조건을 영어로 옮길 때 자꾸 어긋나는 것들

정산 마감을 앞두고 카운터파트에게 메일을 씁니다. "미결제 금액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을 영어로 옮기는데, 손이 멈춥니다. 머릿속엔 outstanding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긴 하는데, 이걸 동사로 어떻게 붙여야 할지 확신이 안 섭니다. 결국 "The money is not paid yet" 정도로 쓰고 보냅니다. 틀린 문장은 아닙니다. 다만 상대가 은행이나 무역 상대라면, 이 문장은 어딘가 아마추어처럼 읽힙니다.
금융, 외국계, 무역 실무의 영어가 어려운 건 문법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문법은 중고등학교 때 다 배운 건데, 정작 실무에서 매일 쓰는 단어들(정산, 미결제, 환헤지, 인도 조건, 준수 여부)이 교과서에는 한 번도 안 나왔던 겁니다. 그래서 아는 단어로 어떻게든 풀어 쓰다 보면, 뜻은 통하지만 프로답지 않은 문장이 됩니다.
이런 표현은 읽어서 익히기가 특히 어렵습니다. 계약서나 리포트에서 봤을 때는 "아, 이거구나" 싶은데, 막상 내가 쓰려면 안 나옵니다. 눈으로 읽은 표현과 손으로 쓸 수 있는 표현 사이엔 생각보다 큰 강이 있어요. 오늘은 그 강을 건너는 데 자주 쓰이는 문장 몇 개를 골라봤습니다. 그냥 "이게 자연스러워요"로 끝내지 않고, 왜 그런지까지 짚어볼게요.
"미결제"를 be동사로 풀지 말고 형용사 하나로
앞에서 나온 상황부터 정리해봅니다. "돈이 아직 안 냈다"를 be not paid로 풀면 문장이 길고 힘이 없어요. 실무에서는 outstanding이라는 형용사 하나가 이 뜻을 통째로 담습니다.
before 문장은 not paid와 still remains가 같은 말을 두 번 하고 있어요. 한국어 "아직 안 냈고 남아 있다"를 그대로 옮기면서 생긴 군더더기입니다. after에서는 remains라는 자동사에 outstanding이라는 형용사를 붙였어요. remain은 "어떤 상태로 남아 있다"를 한 단어로 표현하는 동사라, 뒤에 형용사를 데리고 다닙니다. remain silent, remain open처럼요. 실무 메일에서 이 구조를 알면 문장이 훨씬 단정해집니다. 참고로 outstanding balance(미결제 잔액), outstanding payment(미지급금)처럼 명사 앞에도 그대로 붙일 수 있어요.
환율과 숫자는 be보다 do가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환율이 오르면 우리 비용이 늘어난다"를 영어로 쓸 때, 많은 분이 be동사로 상태를 묘사하려다 문장이 어색해집니다.
is up, is more는 상태를 그림처럼 그리려는 표현이에요. 그런데 환율이나 비용은 '변한다'는 움직임이 핵심이라,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 rise, increase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be동사는 정지된 상태를, do 계열 동사(rise, fall, increase, drop)는 움직임을 표현한다고 기억해두세요. 한국어가 "비용이 더 많다"처럼 형용사로 끝나다 보니 자꾸 be more로 옮기게 되는데, 영어는 "비용이 늘어난다"라는 동작으로 잡는 걸 선호합니다. 그리고 cost는 이런 맥락에서 보통 복수 costs로 씁니다. 개별 비용 항목이 여럿이라는 뉘앙스예요.
컴플라이언스는 "지키다"의 짝 동사를 골라야 한다
"우리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를 keep the rule로 옮기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규정, 법규, 정책을 '준수하다'는 맥락에서 keep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keep은 "계속 유지하다, 보관하다"에 가까운 단어라, 규정을 지킨다는 뜻으로는 어색합니다. 규정, 법, 정책을 준수한다는 맥락에는 comply with나 adhere to를 씁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게 comply는 자동사예요. 목적어를 바로 못 받고 with를 데려와야 comply with the policy가 됩니다. 이 with를 빠뜨리는 실수가 정말 흔해요. 또 하나, applicable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적용되는, 해당되는"이라는 뜻으로, 실무 문서에서 "관련 규정 전부"를 가리킬 때 거의 관용적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all the rules보다 all applicable regulations가 훨씬 계약서다운 톤이에요.
인도 조건과 마감은 시제와 전치사에서 갈린다
"물품은 다음 주 금요일까지 인도됩니다"를 쓸 때, until을 쓸지 by를 쓸지, 시제를 어떻게 할지에서 자주 미끄러집니다.
until과 by는 한국어로 둘 다 "까지"라서 헷갈리지만, 영어에서는 완전히 다릅니다. until은 그 시점까지 어떤 상태나 동작이 계속 이어질 때 써요. "금요일까지 계속 배송하는 중"이라는 이상한 뜻이 되어버립니다. by는 그 시점 안에 한 번 완료된다는 마감의 의미예요. 인도, 납품, 제출처럼 "언제까지 끝난다"는 맥락은 전부 by입니다. 예를 들어 The report is due by Monday(월요일까지 제출)처럼요. 반대로 "협상이 끝날 때까지 대금을 보류한다"처럼 상태가 이어지는 경우는 We will hold the payment until the negotiation is settled로 until을 씁니다. 이 둘의 차이를 손으로 여러 번 써봐야 몸에 붙어요.
리스크는 "있다/없다"가 아니라 동사와 함께 움직인다
"이 거래에는 환리스크가 있다"를 There is a risk로만 쓰다 보면, 정작 리스크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has a risk, be careful은 뜻은 통하지만 관리 관점이 빠져 있어요. 실무 영어에서 리스크는 "가지고 있다"가 아니라 "노출되어 있다(be exposed to)"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험에 얼마나 열려 있느냐를 보는 관점이죠. 그리고 그 리스크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동사로 이어줍니다. hedge(헤지하다), mitigate(완화하다), manage(관리하다)처럼요. be careful 같은 막연한 마무리 대신 which we plan to hedge로 구체적인 대응을 붙이면, 이 문장은 리포트에 그대로 넣어도 될 만큼 프로다워집니다. currency risk 앞에 관사 a가 빠진 것도 눈여겨보세요. 여기서 risk는 셀 수 없는 개념으로 쓰여서 관사 없이 갑니다.
이런 표현들의 공통점은, 한 번 눈으로 봐서는 절대 내 것이 안 된다는 거예요. outstanding, comply with, by와 until, be exposed to. 다 어디선가 봤을 표현들입니다. 문제는 봤다는 것과 쓸 수 있다는 게 다르다는 데 있어요. 검색해서 찾은 표현은 그 메일을 보내고 나면 잊히지만, 직접 손으로 써보고 왜 그런지 이유까지 이해한 문장은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떠오릅니다.
영작만에서는 이렇게 쓴 문장이 전부 저장돼요. 오늘 정산 메일에서 헤맸던 outstanding 문장이, 며칠 뒤 복습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때 한 번 더 써보면, 그다음엔 검색 없이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실무에서 매일 마주치는 표현일수록, 읽지 말고 써보세요. 그게 결국 제일 빠른 길이더라고요.